생활

부여 정림사지-금성산

tack ju 2025. 12. 3. 17:10

2025.11.28.  혼자

 

부여 백제유적을 보고자 논산역 부근에 있는 시내버스 차고지에서 시내버스로 부여 정림사지 정류장에 도착하니 11시가 넘었다. 거의 40분 정도 걸린 것 같다.

 

우선 밥 부터 먹자며 정류장에서 혼자 먹을 곳이 없나 두리번 거려도 딱히 눈에 띄는 곳이 없어 몇 발짝 이동하는데 오른쪽 골목에 중앙시장이라는 커다란 판때기가 보여 시장쪽으로 가자 곧바로 국밥집이 있어 여긴 혼밥도 되겠다 싶어 냉큼 들어가니

 

주방에서 열심히 뭘 하던 주인 아주머니가 "무얼 드릴까요" 물어  "국밥이요"  하자  "어떤 국밥이요" 라고 되물어

 

이 집에 어떤 국밥들이 있는지 모르지만 가게 이름이 장터국밥이라 볼 것 없이 "장터국밥이요" 

 

국밥은 소고기와 콩나물이 있는데 기름 한 점 없는 소고기 반 국물 반 하는 것 같고, 국물은 맑아서 한 방을도 남기지 않고 후르르 다 마셨다. 

이 집 때문에 부여를 또 와야 되나?

 

정류장으로 다시 나오니 왼쪽은 부소산이 오른쪽은 정림사지가 보여 정림사지로 가니

 

무슨 공사중인 것 같으나 밥을 잘 먹어서 그런지 단풍이 곱게 물들은 것 같다. 

 

정문인지 뭔지 그짝은 공사중이라 후문 비슷한 곳으로 들어가 앞쪽으로 후다닥 이동하여 '연지' 부터 순서대로 천천히 둘러 보기로 한다.

 

본래 우리나라 연못의 돌쌓기는 수직이라고 누가 한 말이 생각난다. 반면에 들여 쌓기는 일본식이라던데 맞는 말인지 모르겠다. 그 말을 듣고 가보지는 안했지만 사진으로 경회루 연못을 보니 수직이더군

 

정림사는 백제때 건립되었다는데  현재  남아있는 것은 탑과 저 건물내에 있는 석불이다. 나머지는 모두 '터' 다.

'중문' 터 다음이 5층 탑이다.어느 시대의 왕관 같다는 생각이 든다. 

 

본래 저런 틈새가 있었을까

 

탑 뒤는 부처님을 모셨다는 '금당' 지고

 

금당 뒤에는 교육과 공부 하던  '강당' 이다. 이 건물은 후에 지었다고 하던데 왜 지었는지는 모르겠다. 복원인가?

안으로 들어가자 가운데에 보통 사람 키의 2배 이상 되는 석불좌상이 있고 벽을 따라서 갤러리 전시장 처럼 사진과 설명이 곁들여 있는데 석불좌상이 공부방에 왜 있는지 이 것 또한 궁금증을 불러 이르킨다.

 

정림사 모형 사진을 보니 금당이 2층 형태로 안에 모신 불상의 크기가 상당히 컸을 것이라고 짐작해 본다. 

 

정림사지 옆에 위치한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자 안내자가 있어 석불좌상이 왜 강당지 건물에 있는지 물으니 본래 석불이 쓰러진 상태로 발견된 곳이 거기라서  그 곳에 두었다며 머리등 없어진 부분은 보강을 했다네  

 

정림사지 박물관에서 나와 금성산으로 가는데 부여군유스호스텔이 보여 관리인 듯한 분에게 물으니 2인용 4만냥, 4인용 6만냥이고 예약은 전화로 하라는 군

 

네이버 지도를 보니 저짝 다리 같은게 금성산 들머리로 보여

 

다리 위로 올라 가 가을이 익어가는 모습속에서 준비를 하고서

 

얼마 가지 않아 금성산과 박물관으로 나뉘는 삼거리고

 

10분도 되지 않아 누각이 있는 금성산에 닿는다.

 

이어 고개를 지나 올라가니

 

신삥 통신탑이 있고, 이곳에서 네이버지도를 보자 좌측으로 가야 논산가는 버스 타기가 수월할 것 같아  좌측으로 틀어

 

묘지를 지나고

 

주공아파트 로고가 보이는 아파트단지에 도착한다.

 

아파트 단지를 나와 우측으로 가 정류장의 시간표를 보자 논산가는 버스가 30분에 한 대씩 있다. 이정도면 논산과 부여가 아주 친밀한 관계이지 십다.

 

어느 여자분이 알려준 대로 2:30 버스가 2:38 되니 빈틈없이 도착한다. 그 여자분 시간 개념이 각별하다.

 

논산역에 오자 아침에 보지 못한 게 떡허니 있다. 한 해의 끝에 다달았음을 시사하는것 같다. 

 

"내가 사랑한 백제"  라는 책이 생각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