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신채호 선생 생가(대전). -89주기 추모회

tack ju 2025. 3. 8. 20:34

-2025.2.19. 혼자

우연히 알게 된 "네 칼이 센가 내 칼이 센가" 라는 단재 신채호 선생에 관한 책을보게돠었다. 

'무슨 주의가 들어와도 조선의 주의가 되지 않고 주의의 조선이 되려 한다. 그리하여 도덕과 주의를 위하는 조선은 있고, 조선을 위하는 도덕과 주의는 없다. 이것이 조선의 특색이라면 특색이나 노예의 특색이다. '

 

  가까운 어느 나라는 외래 문화가 들어오면 자기 문화 화 시켜 새로운 문화를 만든다는데 우린 종주국 보다도 더 맹종하는 모습을 보면 참 이상하다 했는데  오래전 단재 선생이 지적한 것을 보고 생가를 방문하기로 한다.  

신채호 선생이 태어 난 곳은 대전 중구 어남동에 있어 그 곳을 둘러 보고 부근 산행을 하기로 한다.  

삼성전자스토어 부근 서대전역네거리 정류장에서 314번 승차하여 산성동행정복지센터 정류장에서 32번으로 환승한다. 

버스는 오월드를 지나고 뿌리공원도 지나더니 한참을 가서야 도리뫼 정류장에 도착한다. 

 

하차하여 보니 정류장 명칭이 도리미 네

 

정류장 앞은 과학기술대학 연수원 입구이고 같은 버스탔던 사람들이 그짝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나도 생가 둘러 본 후 이짝으로 산행을 할 계획이다.

 

단재 생가는 정류장 옆 삼거리에서 좌로 들어 가

 

좌측 기념관을 지나니

 

생가에 도착하는데 어느 분이 따라와 인사를 나누며 이 곳 해설사라고 소개를 하고  기념관에 들려 달라고 한다. 

이 곳 생가는 선생의 진외갓집 동네, 즉 아버지의 외갓집 동네다. 선생은 이곳에서 8살때 까지 사신 후 청주 쪽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한다.

 

생가는 해설사 이자 대전향토문화연구회 회장이신 백남우씨가 젊은 시절에 단재 선생이 대덕군 산내면에서 태어 나셨다는 소문을 듣고서 그곳 부터 물어 물어 찿아 와서 이곳 마을 사람에게 물어 위치를 보니 마늘밭이었다 한다. 

 

 

그래서 서둘러 단재 선생이 태어나신 곳이라는 이 비석을 세우고, 대전시에서는 발굴 작업과 고증을 통해 건물을 복원하였는데 고맙게도 땅 주인이 기증을 하였다고 하는군요. 

 

총 들고 독립운동 하신 분들이 있다면 단재 선생은 펜과 역사가로서 독립운동을 하셨다.  생전에 만주에 있는 고구려 유적을 보고 우리의 역사 서술이 잘못됐다는 강한 신념을 갖고서 역사책 서술도 하셨다. 선생은 대만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 되어 중국 다렌으로 압송되어 10년 형을 받고 복역 중 병이 심해지자 2명의 보증으로 출감을 시켜 주려 하자 단재 선생은 보증인 2명이 친일파라며 거부하여 끝내 옥에서 사망하게 된다.

  

생가를 지나 뒤로 가자 누가 호두나무를 훼손 하였는지 천벌을 받을 것이라는 현수막이 눈에 들어 온다.

 

충남 대덕군에서 세운 비

 

기념관으로 와서 들러보니  단재 선생의 " 역사란 아 와 비아의 투쟁이라는 ..."

 

역사는 당연히 왜곡된 역사가 아닌 올바른 역사를 위해 부단히 힘써온 선생이다.

 

떠나면서 생가지를 뒤돌아 본다.

 

연수원으로 해서 산을 들어가 뿌리공원 방향으로 갈려고 연수원 안으로 들어 왔지만 역사가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저 고개를 올라 오른쪽으로 틀면 뿌리공원 방향인데 내키지 않는다.

 

곧 목련이 태어날 징조다.

 

은행나무가 식재된  곳을 지나 

 

고개에 올라 우로 틀지 않고 반듯이 고개를 넘어 간다.

 

10분도 걸리지 않아 마을에 내려서고

 

 

큰 길로 나오니 신대3리 버스 정류장이다. 

 

이 곳을 지나는 버스는 대둔산 배티재를 왕래하는 34번이다. 

 

-2025.2.21. 금. 혼자

대전 신채호 선생 생가를 방문하고서 이틀후에 청주에서 순국 89주년 추모회가 있다하여 참가하고자 열차로 오근장역에서 내려 큰길로 나와 700번대 버를 타고서 충북교육문화원 정류장에서 211번 버스로 환승한다. 

 

211번을 타고서 귀래리에서 하차하기로 한다. 

 

버스는 거의 1시간 여를 달려 귀래리에 도착하고, 버스에서 내리자 바로 앞에 "단재 신채호 선생 순국 89주기 추모식" 현수막이 올바르게 왔음을 알려 준다. 

 

큰 길 옆 이면도로에 있는 귀래리 정류장에서 추모식장 가는 길을 둘러보니 

 

정류장 뒤는 식당이 한 곳 있고

 

그 옆으로 추모식장 가는 길이 있는데 이정표를 보니 2.5km다. 오늘이 금요일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차편이 모두 매진이라 겨우 한자리 예매를 했는데 추모식장까지 걸어서 왕복 시간 등을 고려해보니 계산이 맞지 않는다. 

열차로 첫차를 타고 왔는데도 이러니 어찌 할꼬!

 

나라를 잃고서 아나키스트로 후반기를 살으셨던 선생님의 추모식을 뒤로 한다. 

"이완용은 있는 나라를 팔아 먹었는데, 이ㅇㅇ은 없는 나라를 팔아 먹으려 한다."  라는 글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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